22.09.2022
오늘은 이렇게 평소처럼 평범하게 기록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단하고 대견한 하루였다
아마 베를린에 와서 처음으로 자기 전까지 한 번도 침대에 드러눕지 않은 날이다
낙서 시작!

수업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풀밭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맑은 마음이 부럽다
나는 좀 때가 많이 묻어서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저렇게 못할텐데..
물 한 병 옆에 두고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웃는 얼굴로 엎드려 혼자 햇빛을 받는 사람
저런 분홍모자를 쓰고 혼자 앉아 있는 사람
친구랑 같이 풀썩 앉아 빵을 먹는 사람
나도 언젠가 xxxxxxx해질 수 있을까?

대망의 이것.
사실 티스토리 구독자들만 생각하면 모자이크 하나 필요 없는 사진인데
게시물을 구독자에게만 공개하는 게 불가능한 티스토리 때문에 정보를 가렸다
전입신고 후 마땅히 와야 하지만 3주째 오지 않는 음…..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
때문에 결국 세무서를 다녀왔다.
아주 많이 걱정했다.
사실 지난 9월 초 전입신고를 하는 날 관공서에서 만났던 직원은 아주 유쾌하지 않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내가 이곳에 온지 겨우 이틀차였고
내가 처음 집 밖으로 나간 날이었다
그러니까 전반적인 상태가 긴장에 사로잡힌 수준이 아니라 통채로 먹힌 수준이었는데
실은 소통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얼어붙어서는 그 직원에게 „Ich moechte anmelden“(일부러 구글 등에 해당 문장을 검색 시 노출되지 않게 조금 바꾸어 썼다 ㅎ) 이라고- 수준 낮은 구성으로 말했다.
mich를 빼먹은 것도 알지만.
그 모든 걸 뒤로 하고도 딱히 인정할 수 없는 직원의 그 묘한 비웃음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몇 차례에 걸친.
그래서 세무서에 향하는 오늘도 두려웠다. 내 앞에 앉아 있을 직원의 태도가 무서웠다. 나에게 얼마나 불친절할지, 얼마나 더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느끼게 할지. 얼마나 나를 불쾌하게 할지. 얼마나 나를 외롭게 할지.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많이. 이 티스토리를 구독해주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실 나는 두려운 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고 가야만 한다는 걸 알았기에
지체하지 않고 나가서 걸었다
어학당에 갈 때처럼
머플러를 두르고 이어폰을 귀에 꼽고
나 안 만만해 라는 표정을 지으며 ㅎㅎ
이제 나는 긴장도 (그때에 비하면)꽤 많이 풀렸고
그냥 소통하면 된다는 걸 알아서
로비에서부터 웃으며 인사, Ich würde gern meine Steuernummer wissen, 길 찾아 입장, 번호표 기계 발견, 등등..
그리고
대망의 일 보는 방 입장.
직원은 아주 친절했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미소로 나를 맞아줬고
그런 미소로 나와 소통했다
소통하고, 내가 구비해온 서류를 보고, 그걸 입력하는 동안 ‘얘 일처리 잘 하네~’라는 만족감이 나에게까지 느껴지게 해줬다 ㅎㅎ
사실 전입신고할 때도 나는 모든 서류를 (신고자들 중 흔하지 않게)정말 티 하나 없이 완벽하게 준비해서 갔는데도 불구하고. 그 직원은 뭐가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지- 유쾌하지 않다는 걸 드러냈었는데.
직원은 금세 ID를 뽑아주었다.
웃으며 인사하고 방에서 나와 걸었다. 로비에도 웃으며 인사했다.
모르겠다. 지금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전입신고하던 날과 오늘을 함께 생각하면서
정말 이 감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데..
이 사회 표면에 녹아간다는 느낌이라 해두자.
그걸 느꼈다.
나는 그때에 비해 긴장을 덜 한 얼굴과 몸으로, 실제로 그러한 마음으로, 여기 사는 사람들과 비슷해진 옷차림으로, 편해진 소통으로
나도 그때에 비해 무르익었고
이곳과 나는 중한 일을 하나 더 헤쳐나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드디어 콤메르츠방크 계좌를 열었다
내일은 수업이 끝나면 서류를 들고 필리알레에 가서 본인 인증을 할 것이다
한국에서 부치고 온 총 50키로 택배를 받아 옮겼던
바이에른 사람 같이 생긴 친절한 아저씨가 있는
그 필리알레

What츠앱을 깔았다 (여기서 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것)
이제껏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왓s앱있어? 라고 물을 때마다
없어. 라고 말하며 아쉽게 됐네-라는 표정을 지어줬는데.
사실 왓츠앱이 없는 덕에 더 안 가까워져서 좋았다.
그래도 앞으로 메신저가 필요할 듯 해 깔았다.
이미 깔아버렸지만
‘왓츠앱 없어-(아쉬운 표정)’은 종종 써먹을 방법으로 두겠다.

모눈이 참 가고 싶다.
떠나기 직전 서울에서도
출국 전 꼭 모눈에 가야지. 하고 적어두었었는데
결국 못 들르고 이곳에 와버렸다.
구로는 참 이상한 동네야.
내가 좋아할 구석이 없는 동네인데
좋아하는 구석이 아주 있다.
그리고 구석 말고 그 전체가
내가 좋아할만하지 않은데
자꾸 눈과 발을 이끄는 동네다
내년엔 꼭 남 선생님의 오프라인 수업을 도와
일 주에 한 번 정해진 요일에 모눈에 가는 생활을 하고 싶다.
그런데 이제는 고인 물이라고 선생님이 안 시켜주실 것 같다

+ 아침 학원 가는 길에 커피를 테잌아웃 했다.
아이스커피.
독일은 아이스커피가 드럽게 맛없는 것 같다.
내 입맛에 그렇다.
쌓여가는 동전을 처리하려고
유로 센트 종류별로 개수 써두고
열심히 걸으면서도 지도앱으로 가격을 찾았는데
갔더니 테이크아웃 추가 비용이 있다.
동전으로 아주 딱 모자라는 가격.
결국엔 10유로 지폐를 내고.
약간의 바보짓가루를 더 뿌린다.
타국살이는 언제나 재빨랐던 나를 자주 바보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