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2022
이케아와 바우하우스(철물 가구용품 등을 파는 거대한 곳)를 다녀왔다
고작 며칠 안 나갔다고 다시 스프링마냥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나가기가 조금 무섭다
버스에서 누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진 않을지
철없는 남자애 혹은 노인이 나를 큰 목소리로 조롱하진 않을지
막상 여기는 21세기를 착실하게 잘 살고 있는 듯 한데
나는 뭐가 맨날 그렇게 무서워서는
매일같이 집안일을 할 때에도 누가 나에게 인종차별을 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한다
거의 매일 똑같은 상황
나의 대응법과 내가 지어내는 그의 반응은 그래도 매일 다르다
나랑 그 사람은 각자 5마디 정도를 서로 주고 받는다
어쨌거나 가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숨을 한 번 쉬고는 나간다
여기서는 ‘해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무언가를 했다

부피를 크게 차지하거나 무거운 것 번거로운 것은 빼고
여기서 평생 살 일이 아니니 좋은 것들 중 가장 저렴한 것으로
단기 두집살림 기본값

이케아 바로 앞에 있는 맥도날드.
한 달 전부터 먹고 싶었는데 드디어 먹는다.
어제도 먹으려 했는데 날 절망시켜서. 잠깐 슬프게 한 맥도날드.
직접 가서 먹으려고 그랬나보다 좋게 생각하고 잠들었었다.
나는 한국 내 햄버거 프랜차이즈 인기 3사 중 맥도날드를 가장 좋아한다. 나머지는 내 돈 주고 사먹지 않는다. 롯데리아는 그냥 형편 없고, 버거킹은 감자칩이 뚱뚱해서 짱난다. 맥도날드는 버거도 평범 준수하고 감자칩이 내 맘에 들게 얇고 바삭하고 어떤 부분은 눌러서(?) 기름지다. 만족스럽게.
이럴 줄 알았지만 역시 딱히 좋지 않다.
특히 이 메뉴가 그러한 것인지 이 햄버거는 한국보다 못하다. 입맛이 달라서 그런가? 치즈가 느끼해.
이런 류의 음식은 먹으면 ‘역시 딱히 좋지 않네‘ 생각하면서 왜 한 번씩 찾게 될까? 막 좋아하면서 먹으면 몰라도.
그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컬리후라이가 있어서 행복하다.
독일생활 만렙인 척 휴대폰을 하면서 버거를 먹는데 단톡방에 이케아 간다고 이야기했더니 스티브가 ’도움 필요해?‘ 묻는다. 빈말인지 진심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진심이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여기는 친절한 사람을 만날 확률은 조금 더 높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있는데 저기 앞에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는다. 할아버지는 혼자 맥도날드에 왔다. 안 보는 척 하지만 눈길이 향한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할아버지들은 나를 속수무책으로 만든다.
다음번엔 한국의 1955같이 생긴 걸 먹어보겠다.

이케아. 정말 ‘카오스’였다.
이케아를 딱히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한국에서도 가본 적이 없는 이케아 매장. (엄마도 마찬가지다. 내가 3-6세 시절 러시아 생활을 할 때 이케아에서 몇몇개를 싸게 구매했으나 품질이 안 좋아 금방 망가졌다고 한다. 지금 보니 아마 이케아가 한국 시장에 발을 들일 때 이 얘기를 들었던 것이 내 무의식에 자리했나보다 싶다)
정말 재앙 수준. 미로가 따로 없다. 여기서도 길 하나는 기깔나게 찾은 나인데. 주변 모두가 인정하는 공간감각인데. 이건 정말 .. 아닌 듯 하다.
사람들이 길을 잃게 하고 모든 곳을 지나쳐 목적지로 가게 하기 위해 극도로 철저히 설계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은 좀 소름 끼친다. 너무도 거대하고 미로같은. 모든 물자가 무섭도록 많은. 다 어디서 나고 어떻게 옮겨져 여기까지 왔을지 상상도 안 가는. 난 확실히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뭘 사겠다고 생각하면
1. 배송시키지 않고 사올 수 있는 매장이 있나본다. (배달쓰레기도 안 나오고, 배송 시간도 소요되지 않고, 물건을 확인할 수 있고, 짧은 여행 삼아 외출할 수 있음)
<매장에 재고가 있어 사러 갈 수 있을 경우>
2. 간다
3. 물건을 2분 안에 바구니에 담는다
4. 10분 이내로 구경한다
가 나의 평소 순서인데 이케아에서 정말 얼마나 시간을 낭비했는지 모른다. 왜 그러냐면.. 미로 속에서 <물건찾기> 조회가 되는 노트북 같은 걸 발견해서 거기서 내가 사려고 생각해온 물건 모두 장바구니에 담고 세부위치까지 스캔했는데. 그 세부위치가 단 한 개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 거대한 이케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지금에야 이렇게 짧게 얘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혼돈이었고. 나는 왜 여기서 이렇게 무력한 외국인 따위가 되어야 하는 건지(물론 이건 후에 이케아 세부위치 시스템이 쓰레기였다는 걸 알고 미개한 유럽. 똑부러지는 나. 하고 멀쩡해졌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5유로 내고 배송받아야겠다. 또 우체국에 맡겨버리면 힘들어도 찾아러 가야지 뭐.
를 잠깐 했으나.. 여기 온 시간도 버스값도 아까웠다. 난 대체 며칠 전부터 맘 먹고서 오늘 여기 왜 온 거야? 맥도날드 먹으러?
용납할 수 없었다. 이 건물 안에는 있을 테니까 찾으러 다녔다. 그리고 전부 다 찾았다. 그중 합리적인 것만 구매했다.
둘러보면 대다수의 유럽인들은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다. 그리고 비유럽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다닌다. 즐겁게 구경하며.. 물건을 고르며 같이 온 연인에 ‘아니면~’이라 말하는 (한국에서도 같은 상황에 똑같이 쓰는) 독일말도 들린다. 좋지? 알아 나도. 나도 얼마나 좋은지 아주 잘 알아. 부럽다. (이렇게 쓰는데 지금 조금 눈물이 날 것 같다.) 혼자인 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다. 집에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부르고 싶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건.. 외로운 일이다.
그래도 이날은 모든 걸 무사히 구매해 집에 왔다. 바우하우스도 이케아에 비하면 약과지만 꽤나 힘들었는데, 이케아는 아주 좁고 작게 끝도 없이 이어진다면 여긴 거의 코스트코의 거인 버전 수준으로 광활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구 하나의 도움 받지 않고 찾아냈다. 단번에는 못했지만..
셀프계산대도 한국처럼 1초만에 로봇처럼 해내진 못했지만.(나도 나고 시스템도 한국처럼 간편하지가 않았다) 이케아에서도 바우하우스에서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2초의 버퍼링(독해 시간 ㅎㅎ)만 두고 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산다는 건..
스스로가 안쓰럽지만.
하고 좋은 점을 표현해보려고 했는데.
안쓰럽다는 감정에 비빌 수 있는 그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는 길에는 버스의 친절한 아저씨가 ‘앉으실래요?‘ 하고 안쪽 자리를 내주었고 내릴 때도 내가 내리려 하니 ’당신도 내리시나요?ㅎㅎ‘ 했으며
버스에서 내려서 집 건너가는 신호등에서는 따뜻한 할머니가 웃으며 ‘머리끈 떨어뜨리셨어요’라고 말해주었다

집에서는 오늘 사온 면류를 빨래한다. 아, 오늘 산 것들에는 또 중요한 조건이 있었는데 바로 세탁이 되는가 여부다. 생각보다 많은 카펫 및 러그가 물세탁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몰랐는데 카펫류는 저렇게 차곡차곡 접어서 넣어야 빨래가 잘 된다고 한다. 찾아보고 처음 알았다. 여태껏은 비슷한 세탁할 때 일부러 쫙 펴서 마구마구 꾸겨 넣었는데.

잊을만 하면 내가 김백김에게 얘기하는 뚜왕뚜왕.
빨래 돌아가는 동안 김과 또 뚜왕뚜왕 얘기.

말리는 중.
저것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썼다.
이미 커튼이 4개나 되어 더이상 커튼을 새로 걸 수 없었고(저 커튼은 저기 걸기 위한 용도로 산 것이 아니기 때문)
적은 도구로 머리를 써서(지금 생각해도 너무 비상하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걸었는데.
원래 용도가 아닌 용도로 사용하려니 간단치 않고
3미터가 넘는 이 층고에
사다리를 이용해도 저기에 팔이 미세한 동작이 자유자재로 가능하도록 닿지는 않고
아무도 사다리를 안 잡아주고
들고 있을 팔은 나 하나고
밤이라 실내에 불을 켜고 있으니 커튼이 치워지면 내 존재가 그대로 앞집에 드러나고
저 자리 근처로 두어야 하는 빨래건조대와 사다리 끄는 것도 밑 집에 시끄러울 것 같고.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했다.
여기서는 그래도 하는 게 많고
혼자 하는 게 많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라 생각하는 일이 많다
첫 자취방에서 혜윤이랑 부엌 선반을 조립했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희망에 차서..
혜윤이랑 같이 타임랩스도 찍고
혜윤이가 도와줘서 고된 줄 모르고 이런 것도 재밌다 하며 오손도손 힘을 모아 설치했었는데
혜윤이 자주 초대해서 놀아야지 기대도 하며
오늘 여기가 한국의 집이었으면 승렬이가 이케아도 같이 가주고 이케아 밥 먹어보자고 나 옛날부터 이케아는 싫은데 이케아 밥 한 번은 먹어보고 싶었다고 말하면 경이 저거 먹어보고 싶었어??? ㅎㅎ 하면서 먹어주고 집 와서 설치도 앞장서 해줬을텐데. 내가 할게 하면 사다리 잡아주면서 조심하라고 말해줬을텐데.
오늘은 사다리가 흔들려 내가 떨어질까봐 무서웠다. 다른 거 다 안 바라고 누가 사다리만 잡아줘도 나는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내 주된 정서가 ‘슬픔’이 아니니 나를 걱정하지 마 친구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