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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23

경 Kyung 2023. 5. 1. 00:12


화곡? 이름도 모르는 동네에 와 나는 카페에 앉아 있다. 학생 두 명. 나풀거리는. 그들의 대화가 들린다. ‘우리 학교에 아스트로 팬인 애 결국 조퇴했잖아.’ 이제는 그것이 어떠한 슬픔인지. 나는 짐작해볼 수가 있다. 그런 걸로 조퇴를, 아는 이도 아니면서, 자기 할 일 할 생각이 없는 애군, 공과 사 구분 못 하는 인간이군, 등의 말은 스물 네 살이 된 나에게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그 아이의 슬픔을. 나는 조금은 알 수가 있다. 같은 세월에 태어나 같은 세월에 함께 살던 이를 잃은 자의 슬픔을. 이제 나는, 슬프게도, 내가 겪은 누군가들을 통해 떠올릴 수가 있다. 그런 식으로 잃었던 누군가를.
그는 어떻게,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세상을 떠났는가. ‘미안해요, 기다린 제 기척이 너무 시끄러웠지요? 제가 너무 살아 있는 척했지요?’ 존재를 소천으로써 처음 알았던 날 읽게 된 한 시인의 시 구절처럼. 그는 그래서 그렇게 조용히. 기척을 내지 않고. 떠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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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 놓은 도시 마그넷들을 보며. 나는 여행에서 무엇을 바라는 사람인가? 로컬 오가닉 카페. 로컬 서점. 그곳의 엽서들. 좋아하는 산책길. 공원.

지현이는 포르투에서 내게 줄 마그넷을 샀었다. 내가 그것을 받았더라면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처음 오롯이 가진 마그넷이었을 것이다. 나는 물건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그넷을 보자마자 이렇게 그 와인병모양 마그넷들을 가만히 떠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조금 전 그 이의 죽음을 서술해놓고도 이 카페 찾아오길 잘했다 생각한다. 더 일찍 와보자, 와서 걷자 생각한다. So ist das Leben, weiß ich s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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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에게 왔을 때 그때는 딸기의 계절
딸기들을 훔친 환한 봄빛 속에 든 잠이
익어갈 때 당신은 왔네

미안해요, 기다린 제 기척이 너무 시끄러웠지요?
제가 너무 살아 있는 척했지요?
이 봄, 핀 꽃이 너무나 오랫동안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어요

우리 아주 오래전부터
미끄러운 나비의 날갯짓에 익어가던 딸기처럼 살았지요
아주 영영 익어 버린 봄빛처럼 살았지요

당신이 나에게로 왔을 때
시고도 달콤한 딸기의 계절
바람이 지나다가 붉은 그늘에 앉아 잠시 쉬던 시절

손 좀 내밀어
저 좀 받아 주세요
푸른 잎 사이에서 땅으로 기어가며 익던 열매 같은
시간처럼 받아 주세요

당신이 왔네
가방을 내려놓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네
저 수건, 태양이 짠 목화의 솜
작은 수건에 딸기물이 들 만한 저녁 하늘처럼
웃으며 당신이 딸기의 수줍은 방으로 들어와
불그레해지네 저 날숨만 한 마음속으로 지던
붉은 발걸음 하나

미안해, 이렇게 오라고 해서요
미안해, 제가 좀 늦었어요
한 소쿠리 가득한 딸기 속에 든
붉은 비운을 뒤적이는 빛의 손가락 같은 간지러움

당신이 오늘 계절,
딸기들은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영영 오지 않을 꿈의 입구를 그리워하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