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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체류 돌아보기_ 1

경 Kyung 2025. 3. 26. 17:12

이제껏 있었고 보냈던 시간에 대한 기록.


아이고. 한국에 온 지가 한 달인데 이제서야 제대로 앉아 그간의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매 시간. 한 달 가량이 되는 시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들 중 어느 것들은 휘발되고 어느 것들은 내 몸 속에 남는다.

한국에 반 년 만에 발을 디디고 나서는 한 주 넘게 아주 아파서 ‘한국 일상’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이 불가했다. 언제나 한 달 가량의 한국 체류는 그러하지만 이번 체류는 첫 주를 꽉 채우고도 넘긴 질병으로, 셋째 주를 역시나 꽉 채우고도 넘긴 손님의 방문으로 정말 재빠르게 지나갔다. 어떤 주는 월화수목금토 사람을 만나러 갔고 어떤 날은 하루에 세 명의 사람을 따로 따로 약속 잡아 만나기도 했다. 이번 체류 중 느낀 점 중 한 가지는 2개월을 초과하지 않는 머무름 속에서는. 친구를 한 번 체류에 한 번만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도시에 살아도 사실 친구는 3개월 혹은 6개월에 한 번 만나는 것이 어색한 일이 아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고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서로가 서로를 보고 싶다고 해서 두 번 만나는 것은 사실상 무리임을. 설령 그것이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 할지라도. 처음으로 체험했고 받아들였다.

그간의 이주-이제는 내게 짧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생활을 지나오며 반복된 나의 한국체류도 양상이 발전하였다. 약속을 잡더라도 함께 식사한 후 카페에 가는 등 오래 시간을 보내는 만남이 아니라.  커피 한 잔 하면서 만나자. 하는 약속으로 많은 만남을 배치했다. 그것은 나의 시간 관리 측면에서나 상대에 대한 나의 집중도 측면에서나, 내 몸이 원하는 끼니의 성사 가능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좋았다. 앞으로도 정말 나의 손꼽는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커피 만남을 한 번씩 하는 방향으로 약속 관리를 하는 것이 나에게 좋다고 생각되었다.

여성의 날 상징색은 보라색. 보라색 옷이 없다. 두 개인가 있던 연보라색 옷은 나의 여름뮤트 후배 다정이에게 전해주었다. 이런 저런 드레스코드를 맞출 일이 많으니까 다양한 색의 옷을 천천히 구비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셋째 주에는 제주에 다녀왔다. 이번 제주 여행의 특징적인 점으로는 면허 취득의 필요성을 통감했다는 것이 있다. 나의 경우 한국에서 면허를 따도 서울이 본거지이니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이동이 가능하고, 독일에서 독일 학원에 등록하여 운전면허를 따는 돈 낭비 정신 낭비 짓은 하고 싶지 않았고, 한국에서 면허를 취득할 경우 취득 후 한국에서 6개월 체류를 해야 독일에서도 인정 받을 수 있는 국제면허증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 국제면허증으로 독일에서 운전할 일도 사실상은 없기 때문에. 면허 발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정말 ‘통!감!’했다. 여전히 면허를 따기에는 내 생활의 여러가지 애매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다음 한국체류에는 한 주를 면허증 취득을 위해 비워두고. 따내리라! 이것도 꽤나 자세한 계획을 세워뒀다. (학원을 등록한 후 취득까지)한 주에 가능한 미친 계획,,!
그 외에는 정예 아저씨랑 친해져서 내가 결혼식을 한다면 꼭 정예 아저씨를 불러주기로 했고 정예 아저씨는 한 번 사놓고 못 입은 특별한 셔츠? 블라우스?를 입기로 했다. 나중에 내가 하는 결혼식에는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가 즐거운 옷을 입고 자리를 빛내주었으면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호 언니는 모호색깔의 편한 앞치마 등등을 입고 올 수 있고 새나 님은 로브를 걸치고 올 수 있는. 일종의 파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정예 아저씨는 이제 제주에 충분히 산 것 같다고 한다. 필요한 때에 와서 덕을 많이 봤고. 필요한 만큼 살은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사람들이 ‘제주는 오래 살 곳이 못 된다, 결국 다 떠나온다’라고들 말하는데. 나는 그런 식의 ‘제주 인생한철론’의 미묘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어떤 곳도 사실은 때가 닿아 한 철 살다가 한 철 떠나갈 수 있는 곳인데.. 너무나도 고정적인 직장에. 너무나도 과잉된 도시에.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에 맞추어 사는 곳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번 체류에는 내가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있음을 많이 느끼기도 했다. 옛날 같았으면 그렇게 화가 났을 길거리의 무명 얼굴들. 째질 듯한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personal space없이 나를 막 치고 지나가고.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하지 못하고. 남들이 자기 눈에 다르면 막 쳐다보기 바쁜. 옛날에는 나를 너무나도 미칠 듯하게 만들었던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동정 아닌 연민이 들었다. ‘옛날에 정말 시끄러운 곳에서 일을 해서 크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나봐.’, ‘자연 속에 가서 쉼호흡하고 좀 새로운 기운을 얻어올 마음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저렇게 앞만 보고 나를 치나봐.’, ‘어렸을 때 교양적인 태도에 대해 노출되지 못했었나봐. 그런 걸 따질 수 있는 것 자체도 어느 정도는 특권의 영역이야’와 같은 내게는 없는 관용이 말 그대로 샘솟아 올랐다. 그리고 내가 그런 마음으로 미세하게 미소짓고 다니니까 사람들도 나를 내가 이전에 느끼던 것보다 더 존중 있게 대해주었다. 이곳과도 일종의 거리감이 생기니까 이러한.. 내 인생에서 가져보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포용력을 얻을 수 있었고. 실제로 사람들 또한 일반적으로 점점 더 의식 있게 행동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이러한 달관의 상태는 내가 내 몸을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할 경우(매번 저녁을 먹는다거나 혹은 타의로 바쁜 일정에 쫓아 다녀야 한다거나) 쉽게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한 번 경험해봤으니 그 상태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알아서 스스로를 그곳으로 내리는 훈련만 하면 된다.

저녁을 안 먹는 생활이 짧은 한국 일정에서도 이어져서 좋았다. 일정이 있어 먹을 때는 기꺼이 맛있게 신나게 먹었지만 나의 기본적인 상태를 아침점심 두 번의 식사로 유지하니 정말 몸과 정신에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