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6.2022
이렇게 카페에 앉아 독일어를 펼쳐놓고 있으니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네
그때 제비꽃다방 아저씨는 나의 철없음까지 그저 보아줬고
준구 샘은 물론이야
그날들 중 하루 부암동 공기가 코를 스친다
자라는 동안 참 많은 어른들이 보살펴주었어
오늘도 똑같이 앉았으면 했던 창가자리
다행히 앉았네
하긴, 아무도 탐낼 것 같지 않은 자리야
나도 원래는 햇빛이 들어 싫어하니까
아,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군
카페에는 혼자 온 여자아이 여자어른뿐
나는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조용한 여자를 보는 것을 좋아해
어머 나도 그러하네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조용한 여자
누가 봐도 introvertiert, 누가 봐도 eine Frau
좋아하는 갈레트 브루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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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스럽게도 신촌에서 이곳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있네
110B, 고대 근처도 지나는 그 버스
그 애는 그 촌구석 내 학교까지 많이도 와주었는데
나는 멀지도 않은 그곳에 간 적이 딱 두 번인가
진정으로 아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는 꽤 자주 들었지
버스는 이름이 너무도 푸르른 녹사평과
어릴 적 몇 번 뛰놀았던 한남동을 지나
금방 이곳에 다다른다
창밖에는 참 멋쟁이들이 많아
열심히 꾸며 반짝이는 청춘을 한아름 시끌벅적 즐기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러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뒤쳐진 것 같다 생각해
왜 나의 시기질투는 또래가 아니라
항상 30, 40대를 향하는 건지도
어두운 노트북에 내 얼굴이 비춘다
살의 붓기가 꽤 빠진 요근래
스무살 내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냥 아무렴 어때,
라고
평소엔 마음에 잘 안 들어오는 말이지만 말한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여섯 시
해가 질 준비를 하고 있어
내일 또 만나니까
내일 만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