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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2023

by 경 Kyung 2023. 3. 10.

1. ㅁㄴ 사장님의 마스크 안 모습은 처음 봤다. 날카로운 중년 여성의 모습을 생각했었는데 먹이를 가득 문 다람쥐 같았다. 엄청난 수다쟁이셨다. ㄱㅈ님이랑 친하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구로에 산다면..‘이라는 내 상상의 가장 낭만 있는 버전을 사는 현실 캐릭터다.

혼자 모눈에 앉아 편지를 썼다. 창밖으로는 초등생들이 나풀거리며 지나간다. 나풀나풀 소리도 낸다. 아. 골목이다.

2. 선생님이 나를 아주 반가워하셨다. 사실 나는 가까운 어른들이 나를 싫어할까봐 항상 불안하다. 신경쓰인다. ㅇㅅ 샘도, ㅁㅈ 샘도. 교수님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 환대가 기뻤다.

‘되게 좋아보인다’ 라는 말 뒤에 ‘균형 잡힌 사람의 모습이랄까’ 라는 말. 이어진 두 말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 나 거기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과 대화하는데 내가 자라나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처럼 안절부절하지도 척을 하지도 수박껍데기같은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시집을 받았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시길래 교수님 지금 이게 무슨 뜻이시냐고 했다. ㅋㅋ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좋네. 이렇게 맘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은데.
마지막 말이 안 그래도 불안을 내려놓은 나를 한 겹 더 안심시켰다.

3. ㅁㅊ이와 수목원 산책을 했다. 수목원. ㅁㅊ이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곳을 걸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란히 서서 혹은 앉아서 호수의 물고기들과 오리를 한참 쳐다봤다.
ㅁㅊ이는 거의 매일 혼자 수목원을 걷는다고 한다. 계절이 오고 가는 걸 느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나는 그곳에 살 때 그곳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러지 않았/못했었다.
ㅁㅊ이의 지금 이 시절이 나에게도 또 다른 어떠한 색깔과 형태로 애틋하게 남아 있다.
내가 사는 곳을 좋아해본 적은 베를린 시절이 유일하다.

온실은 말 그대로 여름 같았다.
다시 한 번 ‘구로에 산다면’ 꿈꿔보았다.
미래의 내가 절대 선택할 리 없는 선택지.
하지만 나는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이 수목원에 승렬이랑도 왔었다. 걸었었다.
다른 곳은 그렇지 않은데
구로에는 승렬이와 함께 살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
‘구로에 산다면’이라는 상상 속에는 항상 그 집에 승렬이가 있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백ㅅㅎ 님도 우연히 만났다. 대학 와서 모르는 사람 그러니까 수업에서 마주친 사람 중 유일하게 친해지고 싶다고, 멋지다도 생각했던 분. 그분이 먼저 나를 알아봐주시고 인사해주셨다. 조용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재간둥이셨다. 짧은 대화가 재미났다.

요새는 마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렸다. 새로운 사람에. 뭔가 내부 에너지가 다르다.
ㅁㅊ이와의 시간 또한 이전의 마음 상태였다면 이와 같지는 않았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