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2.2023
요새를 베를린에 포크 같은 카페를 하나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볶이는 콩을 보며 수련 상태에 머물고 그 연기에 명상하는 삶. 가능할까라고 묻지는 않는다. 샬로텐에 위치하면 좋겠다. 계절력이 걸려 있으면 좋겠다. 매해. 현실은 지독할 것이다. 치열할 것이고. 하지만 어차피 다른 일들도 그러하다.
소란스럽지 않은 사람이 좋다. 자기 머리색을 가진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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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2023 15:50
언제 무엇이 포장하고 싶어질지는 모르는 노릇이다. 다회용 포장 천을 들고 다니자. 천은 부피를 차지하지 않을뿐더러 가볍다. 이왕 보부상인 거, 보부상임이 뿌듯한 보부상이 되는 것이다. 플라스틱 혹은 유리 다회용기 말고 천으로 된 포장(?) 용기. 모호 주머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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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2023 15:36
통인시장에서 독일어를 하는 서양인을 봤다. 말을 걸게 되면 뭐라고 걸어야 할까 고민해본다. Kommen Sie aus Deutschland?(독일에서 오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왔으면 어떡하지? 스위스에서 왔으면? 독일어를 쓴다고 다 독일에서 온 사람은 아닌데. 그럼 Kommen Sie aus Österreich(오스트리아에서 오셨어요)? 독일인이 Kommen Sie aus Österreich를 들을 때에는 오스트리아인이 Kommen Sie aus Deutschland를 들을 때보다 아주 가벼운 기분일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Deutsch(독일어)자체가 Deutschland(독일)의 Deutsch이니까. 비독일인 독어모국어사용자가 어디서 독일어를 쓰면 독일에서 왔어요? 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겠고 아니요 오스트리아(등등)요, 라고도 같은 횟수로 대답했겠지. 정작 Kommen Sie aus Österreich를 삶에서 처음으로 들을 그 독일인은 별 생각이 없을 것이다.
체부종잔칫집에 승렬이와 함께 갔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한 입도 먹지 않았다. 김치만두 3개가 남았지만 먹지 않았다. 단무지에도 손 대지 않았다. 이제는 그런 것들에 자동적으로 손이 가지도 않고 그것들이 아깝지도 않다. 어쩌면 승렬이로부터 배운 것이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질서가 없었다. 주말에 이런 식당은 못 다니겠어. 라고 생각했다. 건너편에 아들 셋을 둔 여자와 남자의 생기도 총기도 없는 흐리멍텅한 지친 얼굴이 싫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카페에서 물 한 잔을 부탁할 때 ‘물..’ 하며 말 끝을 흐리는 행동이 정말 싫다. 물을 받은 후 제아무리 ‘감사합니다’를 말해도 소용 없다. 내가 독일에서 ‘Wasser..’ 한다고 생각해보면 이 ‘물..’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행위인지 알 수 있다. ‘물 한잔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 끝을 흐리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도. 수줍음이라고 포장되는 그것들 좀 갖다 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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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2023
베를린에 여행을 가고 싶다. 갔다 돌아오고 싶다. 돌아올 날이 결정되어 있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여행을 베를린에서 하고 싶다. 포크에 들어오는 오후 햇빛이 참 좋다. 이제는 서울에 봄이 왔다. 베를린은 어떠할까.
옷은 정말 언제나 정갈하게 입고 다니고 싶다. 큰 기복이 없는 사람이고 싶다. 어느 도시에 있어도. 언제 누구를 만나도 ‘아 나 상태 안 좋을 때 만났어..’하지 않도록.
포크 사장님. 나물 님. 진심으로 독일 가이드를 자처해주고픈 사람들이 있다. 떠날 때 이용권을 드리고 가고싶다. ㅎ
앞으로 카페면 몰라도 공간과 음식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 음식하는 공간에서는 일하지 않기로 한다. 커피향이 온 몸과 옷에 묻는 것은 좋아도 음식은 그러하지 않기에.
서울에서. 은평구에. 몇 개월 작은 집을 얻어 살고 싶다. 예전의 그러한 곳 말고. 내가 어느 정도 가꿀 수 있는, 12평 이상 19평 이하의 집.
교수님을 만나면, ‘그 이후’의 나는 마비된 것 같다고. 이러한 것을 해결할 것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교수님 인생에서 어떠한 실마리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고 물어야겠다.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이번 학기는 자주 뵙고 싶다고, 수업이면 수업. 전반에 대한 소통을 더 많이 하고 싶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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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23
아베체 학원의 애들과 카페를 가고 밥을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있는 내내 집에 가고 싶어하고 빠져나갈 기회만 보다가 다시는 만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외국 생활을 한국 생활보다도 길게 한 아이들은 확실히 나보다 적극적이며 폭이 넓어 더 기가 빨리는데 독일에서는 이것보다도 더한 적극성, 큰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시간에도 최선을 다한다. 나와 에너지가 맞는 사람과만 지내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해왔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이 사람과 내가 얼마간의 ‘시절인연’을 유지하든. 누군가와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그 사람만큼의 세계를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누나’라는 말을 두 남자아이들로부터 듣고 있는데. 누군가에게(그것도 다 자란) ‘누나’ 소리를 듣는 것은 아마도 처음인 듯 하다. 명철이는 나를 선경이라고, 너라고 부르니까. 언니는 많이 들어봤지만 누나는 처음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적당한 지인 관계의 누군가를 오빠라고 불러본 적도 없다(다 자라서).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척이나 애를 썼다. 입에 진짜 안 붙는 xx쓰, 아주 편한 xx님, 혹은 어릴 적의 별칭 같은 것? 와. 진짜 단 한 번도 없네. 나는 앞으로 더 많이 ‘누나’라는 단어를 그리고 ‘언니’라는 단어를 듣게 될 것이다. 내가 ‘언니(적은 확률로 오빠)’를 말할 빈도보다도 더.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보다 나를 ‘누나’ 혹은 ‘언니’로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날이 올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누나’라는 훅 들어온 단어로부터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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