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신이나 주위에서 못내 궁금해하는 한 가지, 내가 어떻게 해서 여러 외국어를 습득하게 되었는지 더듬어 보겠오. 법정에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게 무슨 자랑거리는 아니오. 남들이 궁금해 하고 내 인생역정의 한 단면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오. 내가 용정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처음으로 접한 글자는 중국 한어가 아니고 일본어였소. 소학교 때 일어를 배우고 해방 후에도 줄곧 일본 서적을 읽었고 지금도 일어책을 놓지 못하오. 다음으로 고등학교에서 중국어, 러시아어를 배웠소. 중국외교부에 근무하면서 중국말을 할 만큼 했소. 러시아어는 대학 때 교재로 채택되어 자연스럽게 익혔고 북녘땅에 들어가서 교수를 하다 보니 학계에 러시아어가 보편화 되어있어 러시아 원전을 수없이 독파해야 했소. 영어는 대학에서 익혔지만 이집트 유학 중 공용어로 쓰였기에 더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소.
아랍어는 전공이었고 10년을 아랍어권에서 살았으니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몸에 익었소. 남한에 와서도 단국대, 외대, 명지대에서 아랍어를 강의했소. 독일어와의 인연은 좀 의외지만 카이로대학 유학 시절 아랍어 고전을 연구하다 보니 필요해, 여럿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익혔소. 프랑스어는 구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 등에서 근무하면서 업무상 습득하지 않을 수 없었소. 프랑스어는 매력 있는 언어로 왜 자기 언어를 사랑해야 하는 지 알게 했소. 스페인어와도 접촉할 기회가 있었소. 모로코에서 있을 때 스페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 호기심에 익혀나갔소.
향학열에 불타던 시절, 아랍어와 많이 뒤섞인 페르시아어에도 도전했오. 이란 동무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웬만한 대화는 가능해졌오. 지금 문명교류학에 천착하고 보니 이도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소. 또, 말레이 대학의 교수로 지내면서 말레이어를 해야 했고, 필리핀 국적을 따야 했기에 필리핀어에도 몰입했었소. 이렇게 보면 동, 서 12개어와 씨름해본 셈이오. 자율적일 때도 있었고 타율적일 때도 있었으나 현재 문명교류학을 개척하는 마당에 인도 고대어를 비롯한 두세 개를 더 배워야 할 것이오. 아무튼 60평생 녹록찮은 외국어의 여신에 사로잡혀 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소. 어찌 보면 비운이기도 하고 행운이기도 하겠지. 이 모든 것은 나의 꿈과 더불어 시작된 기구한 인생역정과 관련된 일일 것이오. 동분서주하며 부대기는 세파 속에서 그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이방어를 낚느라고 시간과 정력을 많이도 소진했소. 그러나 예정된 일이었고 운명으로 여기고 신명을 다했기에 추호도 후회는 없소. 오히려 이제라도 그 결실을 하나씩 맺고 있으니 큰 보람을 느끼오. 사실 외국어는 아는 만큼 세계로의 지평이 한없이 넓어지는 것이니 큰 자산이오. 이상, 내 경험이 후학들에게 무슨 보탬이 될는지 모르겠으되 한 사람이 뜻을 두고 부딪혀 보고 도전했다는 것으로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오.
- 무함마드 깐수, 옥중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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